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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리 신호등에서, 걷는 사람 모양의 초록색 불이 켜졌다. 차들은 멈추고, 사람들은 길을 건넌다. 사람 모양이 있는 이 신호등은 전형적인 픽토그램 (pictogram)이다. 픽토그램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 중의 하나는 올림픽 픽토그램으로, 주최국들은 규정된 형태 안에서 최대한 그들의 문화를 표현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위해 작년 말에 발표된 픽토그램은 런던 지하철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한문의 상형문자를,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호주 부메랑을 픽토그램에 불어넣음으로써 각기 그들의 전통과 문화를 나타내었다. 또한 우리 일상사에서 주고받는 메일에서도 단순한 픽토그램은 상대방의 기분을 읽게 한다. 비상구 혹은 위험물질을 나타내는 생명과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픽토그램에서부터, 단순한 기분을 나타내는 메일상의 픽토그램에까지, 이처럼 픽토그램은 우리 생활에서 이제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는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일상의 픽토그램을, 최초로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조선의 화가'가 있다. 바로 정장직 화가로, 그는 픽토그램 안에 감성과 아름다움을 주입하고 또한 이를 통해 우주를 말하고자 한다. 그의 개인전 "행운을 부르는 픽토그램"이 파리 14구의 에스파스 5 에뚜왈 (Espace 5 Etoiles, 63 rue de gergovie 75014 Paris)에서 10월 11일(월)부터 개최된다. 

전시를 앞두고, 파리 '국제예술공동체' (cité internationale des arts, 이하 씨떼)에 머물며 작업하고 있는 작가의 아틀리에를 찾았다. 프랑스 문화성과 외무성의 지원으로 1965년 개관된 씨떼는 240여개 아틀리에와 30여개의 스튜디오를 갖춘 파리 중심에 있는 외국인 전용 예술활동 공간이다. 정장직 작가는 씨떼 아틀리에를 크게 4개의 용도로 나누어 사용하고 있었는데, 회화 작업을 위한 책상, 드로잉을 위해 스케치북과 색연필. 데생연필 그리고 컴퓨터가 놓여있는 책상, 한지와 붓과 벼루가 나란히 놓여있는 책상, 그리고 4면의 벽은 임시 전람회장 [그리고 그림을 말리기 위한 용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아마 장소에 좀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판화를 위한 책상도 있었을 듯 한 켠에 목판화를 위한 밑그림도 보였다. 

 

▶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의 전시를 축하 드립니다. 우선 픽토그램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 픽토그램 (pictogram)이란 사물, 시설, 행위, 개념 등을 상징화한 그림문자로, 이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문자형식 이기도 하며, 선험적 소통을 위한 본능적인 표현 형상을 시각화 한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픽토그램을 대중과의 자유롭고 편안한 소통을 위해 시작하게 되었으며, 그 모티브를 주역의 8괘에서 얻었습니다. 하늘(天)과 땅(地) 사이에 사람(人)이 있고, 사람의 의식과 그 표현을 8괘를 통해 늘어 놓는 방식과 던지는 방식은 언제나 창의적이고 창조적이며, 새롭습니다. 이는 미술의 에너지, 방향과 일맥상통하며, 항상 혁신, 변화, 그리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일종의 아방가르드 정신을 구현한다고 봅니다. 이는 또다시 '변 즉 불변의 진리' (變 卽 不變의 眞理) 즉 '변하는 것이 곧 불변하는 진리'라는 주역의 명제와도 통합니다. 

 

▶전시제목과 관련하여, 픽토그램이 어떻게 행운을 부를 수 있는지요 ? 

▷▷ 미술작품과 만나는 것 자체가 이미 행운의 문턱에 와있다고 봅니다. 한편의 詩가 운명을 바꾸고, 한편의 소설이 인생의 텍스트 북이 됩니다. 한 줄의 명언, 마치 성서나 불경의 한 구절이 행복과 행운을 가져다 주는 것과 같습니다. 

 

▶ "픽토그램", 말 그대로 "그림"과 "문자"의 중간으로, 부정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문자처럼 명확하게 전달 할 수 없으면서, 동시에 그림처럼 美的 가치를 충분히 전하기에는 애로점이 있다고 보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픽토그램'을 예술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요소로 어떤 것을 보셨는지요 ?

▷▷ 저는 인간존재 지속을 위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오욕 (五欲 : 食欲식욕, 物欲물욕, 睡眠欲수면욕, 名譽欲명예욕, 色欲색욕)과 사람이기에 가지고 있는 칠정 (喜기쁨, 怒화, 哀슬픔, 樂 즐거움, 愛사랑, 惡미움, 欲욕망)은 한편으로는 인간 삶의 에너지 원천이며, 우리 시대 표현과 문화의 핵심으로, 이 모두는 멸하고 또 다시 생성 된다고 봅니다. 예술가의 과제란 이러한 인간감성의 순환고리를 탈출시키는 것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예술의 속성은 카타르시스 (정화)이며, 기준은 진,선,미이고, 방법은 새로워야 한다고 봅니다. 이 세가지가 삼위일체가 될 때 선험적인 쾌감이 충족됩니다. 그런데 작품이 계시성을 띨 때는 이러한 모든 것이 그 자체로 포함된다고 보고 있으며, 그래서 저는 제 작업을 "계시 성격을 띤 얼굴 그림" 이라고 부릅니다.

 

▶작품에서 얼굴표현이 주가 되는 이유는요 ?

▷▷ 오랜세월 동, 서양 인들의 관상을 연구하였는데, 얼굴은 인생 모든 드라마의 핵심적인 파일이며, 특히 얼굴 속의 눈은 그 존재와 삶의 압축파일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얼굴에는 삼라만상이 다 있어, 풍경화도 될 수 있고, 우주도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작품에서 얼굴이 마치 피카소의 그림에서 보이는 아프리카 마스크처럼 느껴지고, 또한 쟝 뒤뷔페의 조각처럼도 느껴지는데요 ? 

▷▷ 라스코 동굴의 벽화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얼굴은 모든 미술에 소재가 되었던 것이지, 피카소나 혹은 쟝 뒤뷔페의 형식은 아니라고 봅니다. 엄밀한 입장에서 본다면, 피카소는 아프리카 원주민, 오세아니아 원주민들의 가면에 나타난 표현형식의 표절본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원주민의 표현은 픽토그램 형식이지만 피카소는 그 의미보다는 장식적으로 시각적인 쾌감을 불러 일으키도록 큐비스트의 시각으로 그린 셈입니다. 마치 원숭이가 사람의 동작을 흉내 내며 주인과 대중들한테 칭찬받는 형식이라고 할까요.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이를 보며 어떻게 느꼈을까 역으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 지금의 픽토그램으로 오기까지 어떤 작업을 하셨는지요? 

▷▷ 40년 전에는 살바도르 달리式 초현실 풍의 유화작업 및 설치미술을 하고, 30년 전에는 모노톤 회화와 추상미술을 하고, 이우환式 개념미술과 설치미술 및 자연미술 운동을 했습니다. 20년 전부터는 얼굴로 장식회화를 하고, 프린팅 및 야외 설치미술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참여)을 했습니다. 최근에는 엘이디 작업, 첨단기자재를 이용한 각종 설치작업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컬러플한 계시미술 형식으로 얼굴을 그리고 있습니다. 파리 씨떼에서도 이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제게 메일을 주실 때, 혹시나 픽토그램을 사용하시지 않으실까 궁금했었는데 사용 안하셨더라구요. 혹시 가까운 친구분들과는 사용하시는지요 ? 

▷▷ 제 픽토그램은 육필로, 오프라인으로 손으로 그려야 합니다. 인간의 땀과 체온과 직관이 그림에 묻어 있어야지요. 그래서 컴퓨터로는 전달이 안된다고 봅니다. 물론 컴퓨터가 정보수집, 전달, 전산기능 등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러나 인간의 영적 표현은 대치할 수 없다고 봅니다. 특히 인터넷상의 악재나 악필은 마치 영혼 없는 로봇 언어라고 봅니다. 

 

▶그림을 그리시게 된 동기는 ?

▷▷ 고향에선 어린시절부터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사실 그 배후에는 건달처럼 놀고 싶고 겉 멋들은 저의 세속적인 욕망 때문에 시작했습니다. [하하]

▶씨떼에는 어떻게 오시게 되었는지요 ?'

▷▷ 팔자에도 없는데, 억지 춘향으로 왔습니다. 한국에서는 프랑스 파리에 그것도 외국작가들이 모여 살며 일하는 씨떼에 와서 작업해보는 것은 많은 작가들이 희망하는 것이지요. 

나이 예순이 다 되어 와서 다행이라고 봅니다, 젊어 왔다면 아름다운 조선을 버렸을 뻔 했습니다. 

 

▶ 씨떼에서의 생활은 어떻게 보내시는지요 ?

▷▷오전 중에는 작업하고, 오후에는 씨떼에서 작가에게 발행한 미술관 프리패스권으로 뮤지엄 관람 및 파리의 문물을 구석구석 구경합니다. 체류작가들의 각 아틀리에별 오픈 하우스전에도 가고 매주 화요일 열리는 음악회 (씨떼 음악가)에도 갑니다

식사는 양파, 감자, 피망, 소금, 두부, 간간히 상추, 고추장, 마치 채식주의자처럼 살고 있습니다. 음악과 시, 그리고 좋은 풍경과 그림, 그리고 간단한 채식 … 

 

▶파리에 오셔서 작업이 달라진 점은 ?

▷▷ 40년 그림을 그려 왔는데 바로 바뀌겠습니까 ? 다만, 파리에서 구입할 수 있는 여건의 물감과 색연필, 그리고 간편한 작업실 여건 때문에, 이곳 사정에 맞추어 그리다 보니 달라졌습니다. 한국에서는 설치미술을 많이 합니다만 (야투맴버 -나투어 쿤스트-자연미술), 이곳에서는 드로잉과 프린팅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마치 두꺼운 옷을 입고 다니다가 옷을 벗고 알몸으로 다니는 꼴입니다.

 

▶후배 작가 분들께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

▷▷ 제가 10세일 때부터 20세까지 구인사 스님이 줄기차게 말씀하셨는데, "화가가 되려면 정든 고향을 떠나야한다, 그래야 성공한다"고... 저도 "젊은 작가는 무조건 고향을 떠나라"고 하고 싶습니다. 

 

부분들의 단순 합이 전체일 수 없듯이, 코(삼각형), 눈(동그라미), 입(다각형) 등의 단순한 집합이 얼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장직 작품은 바로 이러한 주요 부속품(?) 외에도 삶, 진리, 사랑 등이 깃들어야만 진정한 얼굴전체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얼굴들이, 프랑스 철학자 엠마누엘 레비나스 (Emmanuel Levinas 1906-1995) 말대로, "열려있고, 깊이를 얻으며, 이 열려 있음을 통하여 자신을 보여준다". 또한 이처럼 논리와 긴 해명이 필요 없이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타자의 얼굴, 그리고 얼굴이 스스로를 보이는 방식을 레비나스는 "계시"라고 했다. '조선에서 온 화가'가 픽토그램으로 표현한 "삶의 압축파일"인 얼굴 미술은 그래서 계시형식을 띠고 있다고 본다.

 거리의 픽토그램 신호등이 보행자들의 삶과 안전을 지켜준다면, 정장직 작가의 픽토그램 전시회는 우리 관람객들에게 '행운을 불러올 것'임에 틀림없다. 

 

<심은록/파리지성 sim.eunlog@gmail.com>

 

정장직 (JUNG Jang-Jig)

  1952년, 충남 출생

  숭전대학교 문리과 대학 미술교육과 졸업

  홍익대학교 대학원 서양학과 졸업

 

금강자연미술 비엔날레 운영위원, 대전 판화협회장, (전)우송대학교 교수' 야투맴버

현재, 파리국제예술공동체(cité internationale des arts)에서 작품활동.

 

개인전과 주요 부스전

1981 흑인가 흑연인가 (대전문화원)

1987 찍음.직힘 (대전중앙 갤러리)

1993 붓가는데로 칼가는 대로 (홍인갤러리)

1996 회화의 끝에서서 (오원화랑)

1997 훼이스 드로잉 (일본 경도 베니 갤러리)

1998 흙에서 나무로--심류 산장홀 -설치

1999 한시대 연금술 엿보기 (부산시립미술관) 1부스전

1999 화가의 꿈은 사라지고 (마로니에 화랑)

2001 정장직 훼이스도로잉 展 (독일 함부르크 쿤스튝화랑)

2001 한국 미술 2001 : 회화의 복권 1부스展 (서울과천 국립현대미술관)

2004 정장직 교수展 (중국 남경 효장학원 전시실)

2005 한러아트페어 (서울세종문화회관, 1부스 모스크바)

2007 정장직 드롱잉展 (중국 양주, 양주대학교 전시실)

2009 행운을 부르는 픽토그램 - 정장직 초대展 (대전 모리스갤러리)

2010 행운을 부르는 픽토그램 씨리즈 초대전 (대전홍인 갤러리)

2010 행운을 부르는 픽토그램 (파리, 에스파스 5 에뚜왈)

 

이외 다수, 

 

단체전 400여회. 

 

작품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KBS대전방송국, 대전지하철 서대전역,

글로리아백화점, 서울 여의도 한강 고수부지, 

해외대학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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