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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적 감각(Primus Sensus),

프리마 마테리아(Prima Materia) 이후?

존재의 뿌리 그 자체들이, 만질 수 없는 감각의 원천들이 서로 뒤엉켜 있다는

이 가장 신비한 사실을

나는 당신께 번역해 주려고 애쓰고 있다.

-세잔-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하여 많은 문화예술 행사가 개최되는 의미있는 올해에, 퐁데자르 서울 갤러리가 개관하게 되었다. 2008년 파리에서 ‘에스파스 5에뚜왈’ (Espace 5 étoiles, ’퐁데자르’의 전신)이 개관된지 거의 7년 만이다. ‘퐁데자르’(Pont des arts)는 불어로 ‘예술의 가교’를 뜻하며, ‘ 예술과 관련된 다양한 교류가 이뤄지는 중간지대, 그리고 이를 가능하도록 하는 ‘매개자 역할’을 상 징한다. 이름 그대로, 파리와 서울의 퐁데자르 갤러리에서 프랑스와 한국, 유럽과 아시아의 좀 더 활발한 예술 및 문화 교류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퐁데자르 ‘서울’ 갤러리의 개관전 <근원적 감각

>(Primus Sensus)에는 재불작가4인, 김창열(KIM Tschang Yeul), 방혜자(BANG Hai Ja), 진유영 (TCHINE Yu Yeung), 신성희(SHIN Sung Hy)가 초대된다. 사실 재불작가라고 한정 짓는 것이 부 당할 정도로 이들은 프랑스 뿐만 아니라 유럽과 세계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의 화 업은 평균 반세기를 넘어선다. 50여년이 넘게 전업작가로 작업을 해왔으며,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들은 오로지 한 주제, 즉 김창열은 ‘물’(물방울), 방혜자는 ‘빛’ (그려진 빛), 진유영은 ‘그려지지 않은 빛’과 ‘생명’, 그리고 신성희는 공간의 ‘누아주’ (nuage 엮기)에 전념해 왔다는 사실이다. 프랑스에 서 박사 논문을 쓸 때, 짧게는 3,4년, 길게는 10여년 동안 한 주제를 연구하고 학위를 받는데, 이 들은 반 세기 넘게 한 주제를 다뤄왔다. 처음에는 이들의 주제를 프리마 마테리아 (Prima Materia 근원적 물질)로 묶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들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보아오면서 느낀 것 은, 세잔이 말하듯이, 이들 네 작가의 프리마 마테리아에는 이미 예술가의 감각과 존재의 뿌리들이 뒤엉켜져 있으며(근원적 감각), 이들은 그 신비를 « 번역 »[작품으로 재현]하고 있는 중이었다.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병행 행사로 시작해서 올해 초까지 거의 2년 동안 개최된 « 프리마 마 테리아 »[2013.5-2015.2]라는 흥미로운 전시가 있었다. 고대 철학에 의하면, 프리마 마테리아 의 대표적인 4원소는 물, 공기, 땅, 불을 의미하며, 인간과 우주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고대 그리스어로 ‘아르케’(arche)라고 한다. 프랑수아 피노의 미술관인 푼타델라 도가나에서 개최 된 이 전시는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가난한, 빈약한’ 미술)와 일본의 모노하(Mono-ha. ‘Mono’는‘사물’, ‘ha’는‘그룹’을 의미)를 비교하는 전시였다. 이 전시를 보면서,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사이에 중요한 미술운동이었던 랜드아트, 쉬포르/쉬르파스, 등이 함께 연 상되고 비교되며,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이 미술 운동들은 자연에 대 한 인간중심적인 횡포를 중단하고, ‘프리마 마테리아’[근원적 물질]를 존중하자는 것이다. 자연이 나 세계를 인간의 개념으로 동일화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려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메 를로 퐁티는 나와 세계의 뿌리가 공존하고, 나의 신체는 이 세계의 깊이를 감각으로 느낀다고 했 다. 이처럼 프리마 마테리아와 예술적 지각이 분리될 수 없게 섞인 것이 ‘프리무스 센수스’[Primus sensus근원적 감각]이다. 사실 고대 이오니아 철학자들이 ‘아르케’(arche)를 말할 때도, 순수 물질 이라기 보다는 지각이나 감각이 이미 포함된 지각화∙감각화된 물질이었고, 이에 대한 감각은 ‘프 리무스 센수스’이었다.

이러한 바탕하에, 메를로 퐁티는 어떤 행동의 동기는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있다고 말 한다. 즉, 내가 저 꽃을 그리고 싶다면 그 꽃에 동기가 있는 것이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육화 된 주체는 이처럼 나는 여기에 있으면서, 동시에 ‘저 꽃’에 있다. 나의 후각은 이미 저 꽃의 향기에 취해 있고, 나의 촉각은 꽃의 부드러움을 향유하고 있다. 꽃에 취해 있을 때 누군가 나를 건드리면 소스라쳐 놀라며 다시 내 자신으로 돌아오는 연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마티에르를 볼 때, 이 마티에르는 우리의 감각과 분리할 수 없게 섞여 버린다. 이것이 바로 근원적 감각이다. 양자 물리학에서는 관찰자의 현존에 의해, 그리고 관찰자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실험 결과가 달라 지는 것과 같다 (파장과 입자의 두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는 광자(光子)의 « 파장-입자의 이중성

»(dualité onde-particule ou onde-corpuscule) 때문에, 관찰자는 자신의 실험유형에 따라 하 나를 선택해야 한다). 세잔에게 있어서, 이러한 물질과 감각과의 밀접한 관계는 가장 큰 신비였으 며 그래서 이를 ‘번역’해서, 즉 자신의 그림으로 보여주려고 했다

김창열, 방혜자, 진유영, 신성희도 이러한 신비를 번역하며, 깊이 잠들어 있던 우리의 감수성을 일 깨워 예술을 향유하게 한다. 이 예술의 “향유”를 통해, “타인의 [즐거움과]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 는 감수성” (임마누엘 레비나스)을 자극하고 발전시킬 수 있게 한다. 또한 이들의 작품들을 보면서, 정말 현 시대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문제가 무엇인지 등을 물으며, “현대예술에 대한 진지한 관 계를 가지게 되고, 이 시대에 대한 책임감”(발터 벤야민)을 상기하게된다.

 

<심은록(SIM Eunlog 미술비평가, 감신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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